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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 논설위원의 [삶과 생각](67)

기사승인 2024.05.07  16: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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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한계

   
한상덕 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자동차 열쇠를 손에 들고 한참을 찾았다. 주차를 해 놓고 문을 잠갔는지 생각이 안 나, 다시 가서 확인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치매 현상인지 아니면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하느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자신이 실망스러워 위축이 되다가도 주위의 친한 이들도 비슷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말을 간혹 들을 때면 다소 위로가 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이 틀리지 않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하는 일이 많고 잡생각이 동시에 집중될 때는 치매와 비슷한 현상이 더 자주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요즘은 될 수 있는 한 일을 단순화하고 생각을 차근차근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현실이 생각을 따라 주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건 사실이다.

언젠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사를 마친 후 조수석 앞의 쓰레기를 치울 때 딴 생각을 하느라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과 지갑을 쓰레기와 함께 휴지통에 던져 넣어버린 적이 있다. 출발하면서 폰을 찾으니 방금까지 있던 폰이 보이질 않았다. 지갑까지. 하늘이 무너졌다. 다행히 차근차근 역추적을 해서 쓰레기통에서 다시 찾아내긴 했지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하늘이 노래진다.

어떤 거지가 복권을 한 장 샀는데 1등에 당첨이 되었더란다. 어디다 보관을 해야 제일 안전할까 고민하다가 매일 들고 다니는 밥 빌어먹는 깡통 밑에다 붙여놓으면 도난의 위험성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깡통 밑에다 붙여 놓았더란다. 한참을 가다가 생각해 보니 이제 당첨금만 찾으면 곧 부자가 될 것이고, 그럼 깡통도 필요 없게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깡통을 흐르는 강물에 멀리 던져버렸더란다. 그렇다. 아무리 현명한 생각과 판단도 잠시 잠깐의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는 우스개 중의 하나다.

나는 박사과정 공부를 중국에서 했다. 당시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높아 중국에서 크게 어려움이 없이 생활할 수 있었던 점이다. 그렇다고 사치를 하거나 낭비를 하며 살았다는 얘긴 아니다. 스스로 국제 거지라고 별명을 붙였을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했다. 특히 입는데 먹는데 드는 비용을 아끼려고 노력했다.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옷을 사 입어도 헌옷 가게를 많이 이용했다. 자주 가던 헌옷 가게엔 특히 우리나라 옷이 많았다. 회사 명찰이 그대로 달린 옷도 많았고, 새옷 같은 명품 브랜드 헌옷도 많아 너무나 좋았다.

헌옷 가게에 가면 간혹 주인이 한국 돈을 한 주먹씩 쥐고 나와 중국 돈으로 좀 바꿔 달라고 했다. 어찌 한국 돈이 이렇게 많으냐고 했더니, 헌옷 이쪽저쪽 주머니에서 찾아낸 돈이라 했다. 옷을 버리면서 주머니를 확인하지 않고 버린 결과일 것이다. 어쩌면 그 중의 일부는 소중한 비상금이거나 혹은 적은 액수의 비자금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귀한 돈들이 기억력의 한계로 국제 미아가 되어버린 격이니, 귀한 걸 잘 보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런 사실을 잊어먹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 집은 부부의 수입이 한 통장으로 합쳐진 후 아내가 통합관리를 한다. 그러니 네 돈 내 돈이 없다. 서로 필요할 때 적절히 쓰면 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뭔가 허전하다며 자신의 딴 주머니를 하나 찼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슨 얘기냐고? 그 통장이 다 당신 거나 마찬가진데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그러고 싶다고 했다. 동의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도 하나 따로 차겠다고 요구했지만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지금은 아내만 딴 주머니가 있고 나는 없다. 간간이 얼마쯤 들어있냐고 물어도 그건 절대 비밀이란다.

운동기구 속에다 침대 속에다 돈을 감춰뒀다가 깜박하고 내버린 걸 뒤늦게 누가 발견하여 주인에게 돌려줬다는 뉴스를 간혹 접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내 비자금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설령 나는 깜빡깜빡 하더라도 아내는 기억력이 좋아야할 텐데, 좋아야 할 텐데, 요즘 내가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 제목 중의 하나다. 아내 비자금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 헌옷 가게로 넘어가게 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래서 아내에게 강조하고 싶다. 돈을 감출 땐 내게 알려주고 감추라고.

 

하동정론신문 하동정론신문 hdgm97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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