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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 논설위원의 [삶과 생각](49)

기사승인 2023.05.24  14: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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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있어, 나 행복해요.”

   
 

한상덕 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지인의 이야기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어느 아르바이트생에게 신문 심부름을 시켰는데, 신문을 찾지 못하더란다. 탁자에 놓인 10여종 신문들 중, 신문사 이름이 한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지인의 말은 부끄러운 일임을 강조하려 한 게 아니었다. 우리 언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교육도 어느 정도는 제대로 이뤄졌으면 좋겠단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한자를 몰라서 크게 문제되는 건 없다. 하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언어생활에 유익한 것들이 많음을 우린 잘 안다. 그러기에 현실적으로 학교에서는 한자교육에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각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한자교육에 조금씩만 신경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간혹 해 본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집에서 얼마만큼 자녀들에게분명 이렇게 공격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이런 얘길 안 하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그리 됐다. 용서를 빈다.

나는 요즘, 아직 몰랐던 한자나 한문을 더 많이 알려고 하기보단 이미 알고 있는 걸 가지고 어쩌면 더 재미있고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데 상당 시간을 보내곤 한다. 달리 말하자면,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한자성어라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변용하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깊이 궁구하는데 재미를 붙이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은, 중국 고대 진()()()나라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입술이 망하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고사 성어인데, 내 이야기는, 이 고사의 역사적 배경도 중요하지만, 그저 문자만을 놓고 직역을 해도 감동적이요, 이를 패러디하면 더 멋진 메시지의 성어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성어 속의 ()’()’, 두 글자를 반대 의미의 ()’()’으로 바꾸어 놓고 보면 순존치온(脣存齒溫)’이 된다. “입술이 있으니, 이가 따뜻하다.”는 뜻이 된다. 확대해서 말하자면 그대 있어, 나 행복해요.”란 의미로 발전된다. 자연스레 주위의 식구들이 보이고, 친구들이 보이고, 동료들이 보이게 된다. 참으로 좋다.

살다보면 알게 된다. 평소엔 모르고 지내다가 없어지고 나서야 그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되고, 잃고 나서야 그 존재의 크기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알게 되는 그런 현상들. 어찌 후회란 항상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라야 나타나는 것인지?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란,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일임에도, 직접 경험을 통해서만 통절하게 실감하고 가슴을 치게 되는 건 아닌지? ‘순존치온네 글자는 오늘 우리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있을 때 잘 해.”

얼마 전에는 논어구절로 패러디를 한 번 해 보았다. 공자님은 책에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의미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했다. ‘사람다움을 강조한 구절이다. 나는 이 문장을 춘하추동(春夏秋冬)’ 네 글자를 반복하여 춘춘하하추추동동(春春夏夏秋秋冬冬)’으로 변형을 시켜봤다. “봄은 봄답고, 여름은 여름답고, 가을은 가을답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때에 따른 마땅함을 강조한 것이다.

내겐 환갑에 가까운 아내가 한 명 있다. 출근을 준비하는 아내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며 내게 한 마디 던진다. “너무 아줌마 같지 않아요?” 늘 아내는 이렇게 내게 확인을 하려 한다. 늘 예쁘고, 언제나 젊고, 항상 멋지다는 반응을 기대하며. 난 잘 안다. 아내가 그냥 습관적으로 부르는 노래인 줄을. 하지만 손주를 가진 아내에게 한 번쯤은 현실을 말해주고 싶다. 자연에 춘하추동이 있듯 인생에도 춘하추동이 있다고. 자연이든 인생이든 그 계절에 맞는 모습이 가장 멋진 모습이라고. 서늘해야 할 가을 온도가 40도를 육박하면 짜증난다고. 인생 가을을 살면서 봄과 여름 같기를 원한다면 너무 욕심이라고. 그러나 마지막으로, ‘가을 단풍이 봄날 꽃보다 더 아름답다.

순존치온을 생각하면 그냥 감사가 넘치게 된다. ‘순망치한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어도 그냥 슬퍼진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에게 순존치온을 고백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하동정론신문 하동정론신문 hdgm97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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