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한상덕 논설위원의 [삶과 생각](19)

기사승인 2022.01.26  12:14:17

공유
default_news_ad1

- - 존재 가치와 의미 -

   
 

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아들내미가 어려운 시험에 합격을 했다며 한 지인이 자랑을 해 왔다. 그런데 그 기쁜 날, 친구 아내가 던진 한 마디 농담이 가슴을 아프게 하더란다. “아들이 합격하는데 당신은 한 게 뭐가 있소?” 지인은 얼른 대응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렸다고 하기에, 내가 잘난 체 한 마디 속삭여주었다. “그래, 내가 크게 한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병풍 역할은 되지 않았겠소.”라고 해 주지 그랬어.

친구는 아내의 농담을 제대로 받아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농담이라 하더라도 좀 정색해서 자신의 존재감과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면, 진짜로 자랑스러운 결과 앞에 크게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또 가만히 따지고 보면,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각 가정의 식구가 그렇고, 조직의 구성원들이 다 그렇다.

아무리 무능한 부모라 할지라도 계시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무리 철부지라도 자식이라는 이름표 달고 내 옆에 있어주고, 아무리 귀찮은 존재라도 내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얼른 대답하고 달려와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럼에도 우린 간혹 그런 걸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도 생겨났을 것이다.

순망치한,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게 된다.”는 말이다. 평소에는 내게 아무런 유익도 없고 아무런 존재 가치도 없는 듯이 보이던 사람이나 물건도 아무런 오간다 말도 없이 그 자리를 비워버렸을 때, 우리는 그때서야 새삼 그동안의 무한한 가치와 감사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우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날 바라봐 주고 있는 사람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이렇게 고백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순존치온(脣存齒溫)’. “그대 입술이 존재해 주시기에, 치아인 내가 이렇게 따뜻하게 살아갑니다.”라고.

우린 간혹 어린 꼬마에게 난처한 질문을 해서 어린애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와 같은 질문이다. 근본적으로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문제이고 생각이 짧은 어른이다. 아빠는 아빠대로 좋고, 엄마는 엄마대로 좋은데, 어찌 누가 좋을 수 있는가? 그런데 어느 꼬마의 재치 있는 대답은 우리 어른들의 어리석음에 망치질을 해 준다. “엄마가 더 좋아요.” “그래? 얼마만큼 더 좋아?” “아빠만큼요.” 누가 세상을 더 오래 살았고, 누가 더 철이 들었으며, 누가 더 현명한가? 어른들이 어린애에게 배우며 살아갈 판이요, 조금만이라도 더 깊이 생각하며 살아갈 일이다.

나는 간혹 뒤틀리고 못생긴 나무를 기둥으로 삼아, 멋지게 만들어놓은 원두막형 정자를 볼 때면 감탄을 금치 못하곤 한다.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화목(火木) 외에는 별 용도도 없을 듯한 못생긴 나무,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가만히 서서 참으로 귀하고도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줄 때, 그 기둥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곤 한다. 가진 대로 생긴 대로, 능력대로 처지대로, 있어주기만 해도 감사해야 할 사람들, 그리고 비슷한 의미의 물건들. 이들이 곧 오늘 내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함께해 준 병풍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옛말에 태산도 등을 지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泰山背而不見.)”라고 했다. 대단한 그 어떤 존재 가치나 의미도 내가 외면하면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평범한 것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곧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성숙한 삶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갱년기를 겪고 있는 아내가 엊그제 자존감 떨어지는 소리를 해 오기에 내가 한 마디 해 주었다. “아무리 당신이 못난이라 할지라도, 다른 여자들 열 트럭하고도 안 바꾼다.”라고. 이 말에 아내는 입을 삐쭉거렸지만, 내가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하동군민신문 hdgm9700@hanmail.net

<저작권자 © 하동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